경제&일반용어

경제학의 도전과 응전 / 존 메이너드 케인스

d푸른하늘b 2009. 2. 11. 11:11

대공황 치유한 `보이는 손` 금융위기서 부활
금리 낮춰도 소비 늘지않는 유동성함정
정부 재정지출 늘려 유효수요 창출해야
대공항과 닮은꼴, 감산ㆍ실업ㆍ보호주의…차이점, 국제공조로 위기대응

◆경제학의 도전과 응전 / ③ 존 메이너드 케인스◆

`케인스, 60년 만에 부활하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 공황의 그림자를 드리우자 신자유주의는 `공공의 적`으로 내몰렸다. 금융시장에 대한 지나친 자유방임이 적절한 감독과 리스크 관리 기능을 마비시켜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중국과 러시아 지도자들은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미국 정책 실패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며 신자유주의를 공격했다.

◆ `보이지 않는 손` 오기 전에 다 죽는다

=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내놓은 처방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수요가 부진할 때는 정부가 예산 보따리를 들고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것. 애덤 스미스 추종자들인 고전학파가 지배하던 학계에서 케인스 이론은 `신성모독`에 가까웠다.

하지만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고 없다"며 무작정 `보이지 않는 손`을 기다리길 거부했다. 그가 처방한 즉효약, 즉 적자예산을 감수한 재정 확대는 대공황 당시 경제정책 교과서가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행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잇달아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재정 투자를 퍼부어 상당 부분 효과를 거뒀다.

케인스 서거 60년이 지났지만 그가 내린 처방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은 8000억달러 안팎에 이르는 최대 규모 경기부양안 통과를 추진 중이고, 중국도 미국에 버금가는 4조위안 규모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9년 예산안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부터 추경을 논의 중이다.

◆ 유동성 함정 구명줄은 정부 유효수요

= `금리를 낮추면 기업 투자가 증가한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리면 개인 소비가 증가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케인스 시대까지 자연법칙처럼 통용되던 경제이론들이다. 하지만 대공황이 일어나자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사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케인스는 우선 통화 유통속도에서 원인을 찾았다. 고전학파와 달리 그는 통화 유통속도가 일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불황기엔 중앙은행이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기업 투자와 개인 소비가 증가하지 않아 통화 유통속도가 떨어지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 케인스는 이를 가리켜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고 했다.

케인스는 명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5년)에서 고전학파 `세이의 법칙`도 부정했다. 대신 그는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다고 봤다. 유동성 함정에 갇히거나 경제 전망이 비관적일 때는 금리 탄력도가 떨어져 금리를 0%까지 낮춰도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개인은 소비를 줄인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가 된다.

◆ 끝나지 않은 논쟁

= `케인시안 시대`는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두 차례 오일쇼크가 닥치자 케인스 이론도 빛이 바랬다. 고용을 조절해 인플레이션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론 체계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기업과 개인이 물가 상승을 전제로 반응하기 때문에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무용지물이라는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무장한 시카고학파는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를 주도했다.

하지만 다시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의 허점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나면서 케인스가 부활해 돌아왔다. 위기가 지난 뒤에도 케인스 지위가 유지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 목소리 커지는 네오케인시안

= "지금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선 연방정부가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10일 경기부양 방안을 설명하기 위해 가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케인스 시대`로의 복귀 선언에 다름 아니다.

케인스의 후예, 네오케인시안의 대표적 학자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이다. 지난해 위기 발발 직후부터 "제2 대공황의 전조"라며 강력한 정부 개입을 주장해 온 그는 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을 적용해 오바마 정부에 과감한 경기부양을 주문한다. 크루그먼은 "공급과 소비 격차가 2조5000억달러에 달한다"면서 "최소한 13000억달러 이상의 경기부양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다시 각광받는 네오케인시안이다. 위기 원인을 정부 규제 실패에서 찾는 그는 특히 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정부 개입을 주장한다. 스티클리츠 교수는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에 수천억 달러를 넣는 효과는 거의 없다"며 "국유화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IMF 부총재를 역임하고 현재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있는 스탠리 피셔도 네오케인시안으로 분류된다. 그는 이례적으로 한국 정부에 대해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조언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의 경우 케인시안은 아니지만 통화와 재정정책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서머스 위원장은 한때 시카고학파에 대해 사악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現위기, 대공황과 비교해보니

= 기업은 앞다퉈 감원을 발표하고 집값은 속절없이 추락한다. 은행은 문을 닫고 주식시장은 붕괴해 여기저기서 비관자살이 잇따른다. 1929년 대공황과 현재 미국 영국의 경제위기는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식 재정정책 처방이 다시 각광받는 이유도 같은 병에는 같은 처방이 먹히기 때문이다. 선진 공업국 가운데 유일하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은 당시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이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불거지기 전에도 미국 경제는 순환주기마저 잊어버렸다 할 정도로 `골디록스(Goldilocks)` 호황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파티는 항상 끝날 시간이 있는 법. 1929년 10월, 시장에 잠재돼 있던 불안이 한꺼번에 폭발했고 `보이지 않는 손`은 미국 경제를 후려쳤다. 5년간 실업률은 3%대에서 25%까지 치솟았고, 국민총생산은 절반으로 줄었다. 블랙먼데이 이후 주가지수는 1년 만에 8분의 1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위기는 런던 파리 등지로 확산됐고, 미국 내에서만 5년간 5000여 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대량 해고와 기업의 생산 감소가 이어져 대공황기 미국의 공업생산은 20년이나 후퇴했다. 1932년 국민총생산은 3년 만에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국제무역도 붕괴되다시피 했다. 저마다 자국의 산업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나선 것.

이상은 요즘 신문에서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공황 당시와 다른 점도 발견된다. 당시엔 마르크스주의가 득세해 자본주의 종말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자본주의 붕괴를 걱정하지 않는다. 또 현재의 위기 극복은 개별 국가 차원의 노력뿐 아니라 국제공조를 통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대응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정 지출도 당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대공황 때는 철도 댐 병원 등 공공시설 위주로 공공지출이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초고속인터넷망, 친환경기술 등 `지속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와 관련해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케인스식 처방이 1970년대 이후 권위를 잃었는데, 민간 부문의 생산성 향상을 담보하지 못한 게 원인 중 하나였다"며 "무작정 예산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생산성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제조업뿐만 아니라 노동시장과 서비스 분야에도 재정이 투하돼야 한다"고 말했다.



■ John M. Keynes(1883 ~ 1946년)

영국 케임브리지셔에서 태어나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대학을 거치며 수학과 문학 논리학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 기질을 발휘했다.

스승 앨프리드 마셜의 권유로 케임브리지에서 경제학자가 됐지만 이후에는 스승의 학문적 성과를 넘어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냈다. 1920년대부터 일찌감치 자본주의 불완전성을 간파하고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미국에서 그의 이론에 기초한 뉴딜정책을 채택하자 비로소 천재성이 입증됐다.

보험회사 투자회사 잡지사를 경영하고 브레턴우즈협정 영국 대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를 맡는 등 대외활동이 왕성했고, 케임브리지 예술극단을 운영할 정도로 일생 동안 예술에 심취했다. 위대한 경제학자 가운데 경제학 연구에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경제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 말ㆍ말ㆍ말

▷전승국이 독일에 부과한 배상금은 보복적이고, 경제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절망적인 혼란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화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한편에서는 설비가 놀고 있고, 실업자는 급증한다. 이것이 `풍요 속의 빈곤(poverty midst plenty)`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별취재팀 = 허연 차장 / 김태근 기자 / 박만원 기자 / 유용하 기자 / 한예경 기자 /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