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용어

한국경제 `리셋`버튼을 눌러라

d푸른하늘b 2009. 7. 7. 04:39

한국경제 `리셋`버튼을 눌러라
섣부른 낙관론에 단기처방 치중…개혁부진ㆍ고질병 방치

◆經世濟民의 틀이 바뀐다 3부 (1)◆

새장에 갇혀 밤에만 노래를 부르는 꾀꼬리가 있었다. 박쥐가 새장에 다가가 물었다. "너는 왜 밤에만 노래를 부르고, 낮에는 조용한 거지?" 꾀꼬리가 대답했다. "낮에 노래를 부르다가 이렇게 잡혀와 새장에 갇히게 됐잖아. 더이상 낮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했어." 어이가 없어진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은 아무 상관없잖아. 넌 이미 새장에 갇혀 있는데."

달라진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 있는 어리석음을 빗댄 우화 한토막이다.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세계 자본주의에 심각한 균열이 드러난 지 280여 일이 지났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장기 불황의 공포는 초대형 재정적자와 제로(0)에 근접하는 금리정책을 등장시켰고, 이는 `구제금융 거품(Bailout Bubble)`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작은 정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거부감도 크게 감소했다. 또 저성장과 낮은 기대이익을 감수하며 리스크관리에 매달리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요컨대 `금기(禁忌)`는 깨졌고, 예전으로 되돌아 가기에는 경제위기의 골은 깊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진국들은 지난 9개월여 동안 생존을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해 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금융규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80년 만에 추진되는 대개혁이다. 유럽 각국도 중앙은행의 시장 모니터링과 감독기능을 강화하고 정책기능을 재조정하는 식의 개편에 나섰다.

기업과 금융회사 구조조정도 거침없이 진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재정을 쏟아부으며 금융회사의 부실을 털어내고 있고, 시장원칙에 따라 기업 퇴출과 인력조정을 묵묵히 감내해가고 있다.

미국의 6월 실업률은 9.5%로 2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5월 실업률 역시 9.5%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난 5월 한국의 실업률은 3.8%로 1년 전에 비해 0.8%포인트 높아졌을 뿐이다. 그나마도 일부 자영업자와 비정규직ㆍ청년층이 고용 악화의 피해를 뒤집어썼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기 전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란 근거 없는 낙관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안이하게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위기극복을 위한 단기 조치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덕분에 긴장감만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체계 개선과 노동 유연성 확대, 서비스업 선진화 등의 시스템 개혁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오로지 정책당국자의 `말`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오히려 경제위기를 핑계 삼아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각종 고질병들이 마냥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이 `경제 거듭나기`에 열중하는 동안 한국만 예전의 관행을 답습하며 미래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밤에만 노래하는 꾀꼬리`는 오늘날 한국 경제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위기의 징후들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부채 만기의 불일치가 초래한 비극이었다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는 소비와 저축의 불일치가 주원인이다.

이런 판국에 한국 정부와 한국 개인의 빚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관리대상수지와 국가채무비율은 각각 GDP 대비 -5.0%와 35.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5%, 30.1%에 비해 크게 악화된 수치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나라 빚 때문에 정부 부문에 의한 추가 수요 확대(경기부양)도 앞으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월평균 3조원씩 증가했다. 지난해의 2조원을 크게 웃도는 기록적인 수준이다. 넘치는 유동성은 이미 한국 경제의 최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세계가 `집값 버블`로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과잉유동성 흡수를 위한 `출구전략(Exit Stategy)`의 결단 시기는 반드시 온다"고 지적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과잉유동성 흡수를 위한 `출구전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달 19일 유럽연합(EU) 각국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제 경기회복에 맞는 정책적 조율이 중요하다"며 "신뢰할만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경제는 출구전략 실행 시점에 맞춰 다시 한번 요동칠 것이고,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출구전략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이종화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책을 설계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며 "막상 상황이 닥쳐 출구전략을 준비하게 되면 적절한 정책 타이밍을 놓쳐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당장 실행을 할 단계는 아니지만 나중을 위해 출구전략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 이진우 차장 (팀장) / 김태근 기자 / 박만원 기자 / 한예경 기자 / 박용범 기자 / 김은정 기자 / 강계만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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