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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경제학..4..FTA로 시장 개방해도 비교우위론 제대로 작동안해

d푸른하늘b 2010. 8. 17. 21:47
◆ 도전받는 경제학 - 새 해법을 찾는다 ④ ◆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은 2004년 발효 후 6년 만에 양국 간 교역량을 3.3배(연평균 22%) 증가시켰다. 관세 인하로 칠레산 포도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3~5월 수입 포도의 대부분을 칠레산이 차지하게 됐다. FTA로 얻어지는 무역창출과 무역전환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다. 무역창출은 FTA로 관세를 낮춤으로써 기존보다 교역량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무역전환이란 특정 국가와 FTA를 맺으면서 해당 국가 제품 가격이 낮아져 예전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던 것들이 FTA를 체결한 국가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제이콥 바이너 시카고대 교수가 제시했던 개념이다.

국가 간 교역을 늘리기 위해서 있는 관세도 낮추고 규제도 풀어주고 서로 더 많은 무역창출과 전환이 나타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자는 것이 FTA다.

국가 간 교역의 출발 개념은 비교우위다.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란 두 나라 사이에 교역을 하면서 서로 상대방에 비해 경쟁우위에 있는 상품에 집중해 전체적인 효용을 높인다는 것이다. 1817년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정치경제학과 과세 개론`을 통해 내놓은 개념이다.

경제학의 잣대만을 들이대고 보자면 FTA를 통해 서로 상대국에 비해 비교우위인 산업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상황이 다르다.

한국과 중국의 FTA를 보자. 지난 5월 발표된 한ㆍ중 FTA 산ㆍ관ㆍ학 공동연구 양해각서(MOU)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ㆍ중 FTA 체결 시 긍정적 경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협상 과정에서 민감 부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협상 출범 결정 전에 정부 간 사전협의를 개최해 민감성 처리 방안에 대한 상호 이해ㆍ합의 도출을 도모한다."

이에 근거해 한국과 중국은 사전협의를 9월께 시작한다. 교역을 늘리자며 FTA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뭘 뺄지부터 정하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다.

한국과 중국이 특이한 협상 방식에 도달한 것은 서로 겹치는 산업 분야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장을 열어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들을 키워야 할 것 같지만 서로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보호할 수단을 찾기 위해 사전협의를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FTA에서도 비슷하다. 한국이 맺은 모든 FTA에서는 농수산물은 예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식품안전, 식량안보 등 다양한 명분이 있지만 진짜 이유는 농수산업 보호다. 꼭 농수산업이 아니라도 많은 국가가 FTA를 체결하는 데 있어서 자국에 불리한 것들은 협상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시킨다.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FTA 체결 후 상황을 보면 비교우위란 경제학 교과서 속에 있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비교우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그러나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운 FTA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지난해 8월 체결된 인도ㆍ아세안(ASEAN) FTA다.

인도ㆍ아세안 FTA는 80%의 품목에 대한 관세를 낮추기로 해 외형상 모양을 갖췄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FTA를 체결한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인도와 아세안은 FTA로 관세 인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원산지증명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적인 FTA에서는 원산지증명 기준을 한 가지만 적용하고 있다. 인도와 아세안은 부가가치, 품목분류(HS코드) 변경 등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관세 인하 혜택을 주도록 했다. 사실상 관세 인하를 해주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김진욱 외교통상부 과장은 "인도와 아세안 모두 자국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염려로 유달리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교역이 확대되면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분야의 산업이 발달한다는 비교우위론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교역에는 경제적인 이유 외에 자국 내 정치적 상황이 고려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치적 목적으로 FTA가 체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G2시대 글로벌 주도권을 놓고 일전을 불사할 것 같은 중국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이 지난 6월 말 대만과 맺은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은 사실상 `퍼주기`에 가깝다. 미국이 맺고 있는 FTA 중 실제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NAFTA, 호주, 한국 정도라는 것이 통상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스라엘, 요르단, 모로코는 물론 아프리카(오만), 중미(CAFTA-DR) 등은 모두 `정치적 필요`에 기인한 것이란 설명이다.
 
기업들의 `FTA 딜레마`
 
부산에서 신발을 생산하는 한 업체의 대표는 최근 FTA 관세 혜택을 포기하기로 했다.

소규모 생산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다. 원산지 증명을 맞추기 위해 설비 등을 바꾼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 이상의 일이다. 그는 "관세 인하 폭도 크지 않은 데다 거래처 국가들의 통관이 썩 미덥지 않아 도움 되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더(DDA) 논의가 지지부진한 탓에 FTA 체결이 급물살을 타면서 각종 부작용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그디시 바그와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내놓은 개념인 `스파게티 접시(Spaghetti bowl)` 효과다. 스파게티 접시 안을 들여다보면 면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씩 풀어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유래됐다. 스파게티 접시 속의 면발처럼 FTA가 많아지면 국가별로 다른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기 힘들어져 관세 혜택을 포기하거나 또 규제당국으로부터 엄청난 벌금을 부과받기도 한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후 포드가 원산지 증명 서류를 구비하지 못해 4100만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낸 적이 있다. 1996년부터 멕시코 소재 자회사에서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특혜관세를 적용받았던 포드는 2001년 미국 세관으로부터 "그동안의 원산지 증명서를 입증하는 모든 서류와 관련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청받았지만 이에 제대로 응하지 못해 5년간의 관세를 소급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2007~2008년 한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수출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2%만이 FTA를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아시아 지역 내 FTA 체결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교역 중 역내 교역 비중은 2005년(58.58%)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08년에는 56.10%까지 낮아졌다. 이 때문에 한때 전 세계에서도 FTA 체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였던 멕시코 등은 추가 논의를 사실상 포기했다.

현재 멕시코는 FTA가 발효된 국가만 48개국이다. EU를 제외하면 칠레(56개국)에 이어 두번째다. 그러나 멕시코는 추가 협상은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너무 많아진 FTA로 인해 오히려 무역하기가 더 복잡하다는 자국 내 기업인들의 불만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 때도 FTA 체결에 대한 논의는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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